• 주인과는 면식이 없더라도 문화유산이 좋아 찾아왔다면 부질없는 후원회 걱정은 하지마시고 하고픈 이야기 있으면 하고 가소.
  • 2018. 01. 22
  • 기녀, 유난곡여사를 기리며
  • 사진) 유난곡여사 무덤(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산5-1번지)

    유난곡여사
    (1861~1940)188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약 40여년 경주지역에서 활동한 이름난 기녀(妓女)였다. 그녀는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싶었던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기에 임종을 앞두고 일생 동안 모은 전 재산을 육영사업과 국악 진흥을 위하여 기부한 인물이다.

    그녀는
    1861년경에 출생하였고, 19세 때 경주읍성 밖에 거주하던 달성서씨와 결혼하였지만 일찍 남편을 잃었고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. 그녀는 전재산 전답 3만여평을 임종전인 1940년 경주읍에 기증하고, 그해 85일 영면하였다.

    1942
    년 유난곡여사의 유지대로 그녀의 이름을 딴 재단법인 난곡보육재단이 창립되었으며, 재단 산하에 경주유치원을 설립하였다. 이 유치원은 19428월부터 해방이 되는 19458월까지 3년간만 운영되었다. 그 이유는 1945815일 해방을 맞아 재단설립을 주도했던 일본인 경주읍장이 본국으로 돌아갔고, 일부 이사는 사망했으며 나머지 이사들도 재단에서 사실상 손을 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.

    결국
    , 이 재단은 1945년 해방 직후 해체되었고, 재산관리권은 경주읍으로 넘어갔다. 거기에 더하여 재단에 귀속된 유난곡여사의 전답일부가 1949년에 시행된 농지개혁법으로 대부분의 토지는 경작자 손으로 넘어갔다. 다만, 유치원으로 사용했던 대형의 기와집과 논 50두락, 유난곡여사의 동천동 묘소가 남아있던 것으로 짐작된다. 그리고 해방 후 20년이 지난 1965년에 확인된 재산규모는 유치원부지와 유난곡여사의 묘지 484평이 전부라고 되어있다. 따라서 1945년과 1965년 사이에 논 50두락이 또 없어진 셈이다.

    1965
    년 조경규(1902~1988, 독립 운동가이며 부용당이라는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대자원을 설립하여 고아들을 보육한 자선사업가 일 뿐만 아니라 경주 문화계의 대표적 인물이다)가 인수했을 때 유치원 부지를 팔아서 노서동 한옥을 구입하지만, 1978년에 이르면 이 한옥도 경주지역 고분정화사업지구로 편입되어 당시 보상금 1,800만원을 지급받았다. 이 보상금 가운데 800만원은 서라벌국악원 내부수리에 지출되었고, 1,000만원은 학원 전세자금으로 지불되어, 현재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.

    유난곡여사의 기증재산으로 해방 이후
    1955년 동도국악원의 설립 및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고, 동도국악원은 전통음악의 명맥을 유지하는 기관이 되었다. 국악원 단원들의 활약은 1960년대 신라문화제 등 시민축제 때 국악공연을 주도하였고,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악인들이 전통 국악의 명맥을 이어오게 하고 문화유산의 자부심을 갖게 한 것이었다.

    그녀가 남긴 재산은 격동의 세월에 대부분 소진되고 잃어버렸지만 아직도 그녀의 뜻을 이어오고자 노력한 많은 사람들이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기만 하다
    . 그녀의 슬하에는 자식이 없고 일가친척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매년 음력 816일 그녀의 기일을 전후해서 경주시와 대자원에서 그녀의 무덤에 묘제를 올리고 있다. 세상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잘 될 것 같지만 꼭 돈만으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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